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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상익 칼럼] 천국과 지옥의 차이
ptymca  2009-02-20 10:44:04, H : 3,241, V : 710


K라는 고교동창이 간 이식 수술을 받기 위해 미국으로 갔다는 소리를 풍문으로 들은 적이 있다. 병원비가 엄청나게 비싸서 가지고 있던 전 재산을 다 털었는데도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약간의 부동산이 있었지만 급하게 팔려고 하니 필요한 돈에는 턱없이 모자랐다는 소리도 들었었다. 성공여부가 불투명한 채 그는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을 팔아 혼자의 몸으로 미국으로 실려 갔고, 동창들은 아무도 그가 살 것이라는 기대를 별로 하지 않았다. 아무리 의학이 발달했다고 하지만 서양인의 간을 동양인에게 이식하면 결국은 거부반응을 일으켜 죽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마음으로는 안쓰러웠지만 정작 아무런 위로의 기회도 가지지 못했었다.
그런 그를 얼마 전 동창회에서 만났다. 평소에 별로 볼 기회가 없었던 그가 일부러 동창회에 참석하기 위해 올라왔던 것이다. 옛날에는 간경화로 숯같이 새까맣던 얼굴빛이 하얗게 변해 있었다. 눈빛도 마치 어린 아이 모양 천진스러웠다. 어딘가 모르게 예전과는 다르게 달관한 모습을  하고 있는 듯하였다.
그는 죽음을 눈앞에 두었던 경험을 나에게 들려주었다. 간경화 증세가 간암으로 바뀌면서 극심한 고통이 올 때 그는 차라리 죽는 것이 훨씬 행복하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만사가 귀찮았고 죽을 운명이라면 차라리 빨리 죽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뿐이었다. 다만 모든 생활의 에너지가 빠진 몸으로는 자살조차 할 수 없었다. 그는 막상 죽음을 눈앞에 두고 과연 신이 있는가를 절실히 묻게 되었다. 창조주가 있고 다음 세상이 있다면 보다 안심하고 이승의 다리를 건너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병상에서의 그는 몸과는 반대로 의식은 점점 맑아져 갔다. 그리고 아무리 확신을 가지려 해도 신이 계신가에 대한 속 시원한 답은 나오지를 않았다. 이미 삶에의 의지도, 그렇다고 죽음에의 각오도 철저하지 못한 상태가 지속되고 있는 사이 그는 순간순간 자신도 모르게 이 세상에 대한 저주와 악담을 하기 시작했다. 자신도 전혀 의식하지 못하는 저주가 깊은 무의식의 세계에서 이 세상을 향해 오물처럼 토해졌다. 그러다 의식이 들 때면 '내가 그런 마음을 품어 본 적이 없는데, 왜 그런 모진 저주까지 했을까'하는 자책마저 들었다. 그는 거기서 저주하는 자기가 자신이 아니고 악마임을 막연하지만 느끼게 되었다. 천사와 악마가 마음속으로 번갈아 들어왔다 나갔다 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는 차라리 집으로 돌아와 모든 것을 체념하고 방안에 누워 있게 되었다.
어느 날 밤이었다. 항상 혼곤한 피곤 속에서 손끝 하나 움직이기 귀찮아하는 그에게 꿈결에서 어린 아이들의 두런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눈을 떠서 시계를 보니 새벽 한시였다. 그는 살짝 열려진 문틈으로 거실에서 새어 들어오는 촛불의 빛을 보였다. 그는 온몸의 힘을 짜내어 거실 쪽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거실 한 구석에서는 어린 아들과 딸이 촛불을 켜놓고 그 앞에 무릎을 끊고 고사리 같은 손을 모아 기도하고 있었다.
“주님, 우리 아빠를 살려주세요. 사랑하는 우리 아빠 데려가지 마시고 우리와 함께 있게 해주세요. 아빠만 우리하고 있게 해주시면 주님이 원하시는 일이면 무슨 일이든지 하겠습니다. 우리 아빠 좋은 사람입니다.”
아이들의 절실한 기도는 한참이나 계속되었다. 그는 비로소 아직 아빠의 무릎에 앉아 응석이나 부릴 나이의 아이들이 어느새 새벽 한시면 일어나 촛불을 켜놓고 기도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의 눈에서는 굵은 눈물방울이 끊임없이 떨어지고 있었다.
'아! 하나님, 삶이 고통스럽다 해도 결국 행복이란 사랑하는 사람들과 비비적거리며 함께  하는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내 사랑하는 아족과 함께 사는 것이 깨달았습니다. 내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사는 것이 진실한 기쁨임을 이제야 알았습니다. 살려주십시오.'
그는 흘러내리는 눈물 속에서 자기가 살아야 할 절실한 의미를 알게 되었다. 그러면서 한 편으로는 지옥이란 다른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져 철저히 혼자가 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모든 것을 뒤에 놔두고 혼자만이 있게 될 것 같은 죽음의 세계, 그것이 바로 지옥일 것 같았다.
그는 전 재산을 팔아 미국으로 건너갔다. 그리고 누구인지도 알지 못하는 사람의 간을 이식받는 수술에 성공했다. 수술을 한 이후에도 그는 오랫동안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이 없이 병원에서 지내다 이렇게 만난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전하는 그에게서 나는 인생을 달관한 진실 그 자체의 모습을 엿 볼 수 있다. 감정의 과장은 조금도 섞여 있지 않았다. 그는 마지막으로 내게 이런 말을 하고 동창회장을 떠났다.
“미국에서 수술을 하는 바람에 재산도 다 없어지고 사업도 안 돼. 그렇지만 사랑하는 가족 그리고 좋은 사람과 만나 이야기할 수 있는 것 자체만으로도 이 세상은 얼마나 아름답고 살만한 곳인지 몰라….”
그는 짙은 아름다움에 묻혀 빛나게 살아가고 있었다.


필자 : 엄상익님 변호사      출처 : 월간《좋은생각》 1995년 0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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